인문학과 경제_#1 무엇이 뭉크와 모딜리아니의 화풍을 변화시켰을까?

노르웨이의 에드바르 뭉크 (Edvard Munch)와 이탈리아의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는 20세기 초에 활동한 위대한 화가들이다. 이 두 화가의 공통점은 후기로 가면서 화풍이 서서히 변화했다는 것이다. 과연 무엇이 그들의 화풍을 변화시켰고, 이 둘 사이에는 어떤 차이점이 있는 것일까 ?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

2012년 5월 뉴욕 소더비(Sotheby’s) 경매에 출품된 뭉크의 〈절규(Scream)〉는 경매 시작 12분 만에 1억 20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이는 당시로서는 역대 최고의 경매가였다. 뭉크는 생전에 4가지 버전의 〈절규〉를 그렸는데,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작품은 그중 유일하게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것이었다.

〈절규>의 기록이 경신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13년 11월 뉴욕 크리스티(Christie’s) 경매에서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의 〈루치안 프로이트의 세 가지 연구 (Three Studies of Lucian Freud)〉가 1억 4000만 달러에 낙찰되었고, 2015년 5월 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의 <알제의 여인들 (Les femmes d’Alger)〉은 1억 8000만 달러에 낙찰되었다.

2017년 11월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의 <구세주 (Salvator Mundi)>가 무려 4억 5000만 달러에 낙찰되어 현재까지 세계 최고 경매가로 남아있다. 낙찰 당시 세계 최고가는 아니었지만 아메데오 모딜리아니(Amedeo Modigliani)의 〈누워 있는 나부(Nu couché)〉 시리즈 2점(각각 2015년과 2018년에 낙찰)은 나란히 세계 3위(1억 7000만 달러)와 4위(1억 6000만 달러)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다.

 
뭉크의 작품 가격이 높아진 1908년경부터 화풍 변화

뭉크의 절규는 21세기에 1억 달러가 넘는 작품이 되었지만 절규를 그릴 당시 뭉크의 형편은 곤궁하기 그지없었다. 당시 뭉크는 캔버스를 구입할 돈이 없어 마분지에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다. 완성된 그의 작품은 ‘미친 사람’이 그린 것이라는 혹평을 받기 일쑤였다. 절규를 포함한 그의 초기 작품들은 대체로 어둡고 음침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경향은 불우했던 그의 유년 시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왼쪽) Edvard Munch, The Scream, 1895 (이미지 출처 : 시카고미술관)
(오른쪽) Edvard Munch, The Sick Child, 1885–86 (이미지 출처 : Wikipedia)

뭉크는 1863년 노르웨이 뢰텐(Løten)에서 태어났다. 뭉크의 아버지는 의사였지만 가난한 환자들에게서 치료비를 받지 않았다. 자연히 집안 살림은 어려워질 수밖에 없었다. 뭉크의 어머니와 누나는 모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여동생 라우라(Laura)는 어린 나이에 정신병 진단을 받았다. 뭉크 초기의 대표작 〈병든 소녀(The Sick Child)는 바로 이런 어린 시절의 불우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뭉크는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건강이 좋지 못했고, 학업성적도 엉망이었다. 대신 미술에서는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뭉크는 1881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예술학교에 입학해 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나 죽음과 성(性) 등을 소재로 한 청년 화가 뭉크의 작품들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론은 차가웠다. 국립미술관에서 그의 그림을 구매했을 때 개탄을 하는 비평가가 있을 정도였다. 1892년 베를린의 한 전시회에 참가했지만 현지 언론의 혹평으로 8일 만에 전시가 중단됐다. 전시 재개 여부를 놓고 격렬한 논쟁이 오고 갔으며, 뭉크는 이를 계기로 유명세를 치르게 된다. 유명인이 된 뭉크는 4년 동안 베를린에 머물면서 노르웨이를 오고 갔다. 그의 대표작 절규(1893)는 바로 이 무렵에 탄생했다.

그의 작품이 금전적으로도 인정을 받게 된 것은 그의 나이가 마흔을 지나서였다. 계속된 가난 속에서 그가 신경병을 얻으려 할 즈음 스웨덴의 미술후원자 에른스트 티엘(Ernest Thiel)은 뭉크의 유화와 판화를 대량으로 구매했다. 이때부터 뭉크의 그림은 물론 판화들까지 가격이 높아졌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 뭉크 작품의 주 판매지는 독일이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대전 때 스칸디나비아반도가 중립을 선언한 덕에 노르웨이에서는 해운업을 중심으로 경기가 활성화되었고, 미술시장도 덩달아 성장했다.

1916~20년 사이 뭉크 그림 한 점은 3만 크로네를 호가했다. 그가 수천 장이나 팔았던 그의 판화 한 장 가격은 4000크로네까지 치솟았다. 그는 오슬로 근방에 자신의 영지를 구입했고, 1944년 숨을 거둘 때까지 상당한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뭉크의 작품세계에서 눈여겨볼 만한 점은 그의 그림에 대한 수요와 가격이 높아진 1908년경부터 그의 화풍도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그의 작품은 색채가 밝아졌고, 비관적인 주제들은 대폭 줄어들었다.

 
Edvard Munch, The Sun, 1910–11. 뭉크의 후기 작품 The Sun은 초기 작품들과 다른 화풍을 엿볼 수 있다.
(이미지 출처 : Wikimedia Commons)
 
모딜리아니, 가난과 실연으로 화풍 변화

이탈리아의 대표적 화가 모딜리아니(1884~1920)는 많은 초상화를 그린 화가로 유명하다. 가난했던 뭉크의 아버지와는 달리 그의 아버지는 성공한 유태인 광산 사업가였다. 그가 태어날 무렵 유럽 경제의 대불황(Great Depression)으로 광물 가격이 급락하고, 아버지 사업은 어려워졌다. 그러나 과거 모아두었던 재산으로 그의 집안은 그럭저럭 버텨 나갈 수 있었다. 그는 피렌체와 베네치아의 미술학교에서 공부했고, 1906년 파리로 이주했다.

그가 파리에서 그린 누드화들은 미풍양속을 해치는 싸구려 취급을 받았다. 모딜리아니의 형편은 갈수록 어려워져만 갔고, 그는 가난 속에서 온갖 질병에 시달렸다. 수려한 외모로 많은 여성들과 교제했지만 마지막 연인인 잔느(Jeanne Hébuterne)를 만나기 전까지의 사랑은 모두 그에게 아픔을 주며 끝났다.

가난과 질병, 실연의 아픔이 깊어지면서 그의 화풍은 변화하기 시작한다. 초기에 그가 그린 초상화 속 여성들은 사실적 비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목이 비정상적으로 길고, 우수에 찬 모습으로 여성들을 그렸다. 이런 비현실적인 비례는 피폐해진 그의 정신세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뭉크와 달리 그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가난에 시달렸고, 사후에야 작품의 가치를 인정받는다.

뭉크와 모딜리아니의 재미있는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어려웠던 시절의 작품들이 더 인정을 받는다는 것이다. 뭉크는 1908년 이후 부유해지고 그의 화풍도 밝게 변화했지만 사람들은 우울하고 비관적인 1908년 이전 작품들을 더 많이 찾고 더 비싼 가격을 지불했다.

모딜리아니의 초상화들은 비정상적인 인체비례를 가진 것들이 더 유명하다. 이는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왼쪽) Amedeo Modigliani, Portrait of Maude Abrantes, 1907, 정상적인 인체 비례로 그린 초기 작품이다. (이미지 출처 : wikiart) (오른쪽) Amedeo Modigliani, Portrait of Jeanne Hebuterne, Seated, 1918, (이미지 출처 : Wikimedia Commons)
TAG
최신 콘텐츠
  • 뉴스 [보도자료]두산밥캣, 세계 3대 건설기계展 ‘인터마트’ 참가
    2024. 04. 25
    자세히 보기
  • 뉴스 [보도자료]루마니아 대통령, 두산에너빌리티 창원 본사 방문…SMR 역량 확인
    2024. 04. 25
    자세히 보기
  • 뉴스 [보도자료]두산에너빌리티, 카자흐스탄 발전소 현대화사업 추진
    2024. 04. 24
    자세히 보기

다운로드

두산뉴스룸이 직접 제작한 기사와 사진은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단, 워터마크 적용 사진은 제외됩니다.)

다운로드
닫기
메일 발송

뉴스레터 신청

두산뉴스룸은 이벤트 및 최신 소식 등 다양한 정보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전합니다.

개인정보 처리 동의

(주)두산은 ‘개인정보호호법’ 등 관련 법령에 따라 귀하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자 합니다. 귀하께서는 아래의 사항을 자세히 읽어보시고 모든 내용을 숙지하신 후에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인정보의 수집/이용 동의


수집항목
이메일주소, 서비스 이용기록, 접속로그, 쿠키, 접속 IP 정보

수집∙이용목적
1. 두산뉴스룸 뉴스레터 발송
2. 서비스 이용 분석을 통한 서비스 향상

이용∙보유기간
수집 시점으로부터 1년

귀하는 위와 같은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동의 거부 시에는 뉴스레터 서비스의 이용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광고성 정보 수집·이용 동의(선택)

(주)두산은 광고성 정보 발송을 위해 귀하의 개인정보를 수집하고자 합니다. 귀하께서는 아래의 사항을 자세히 읽어보시고 모든 내용을 숙지하신 후에 개인정보의 수집 및 이용에 대한 동의 여부를 선택해 주시기 바랍니다.

수집항목
이메일주소

수집∙이용목적
1. 두산뉴스룸 광고성 정보 발송

이용∙보유기간
수집 시점으로부터 1년

귀하는 위와 같은 개인정보 수집∙이용에 동의하지 않으실 수 있습니다. 동의 거부 시에는 프로모션, 이벤트 등의 광고성 정보 수신이 제한됩니다.
※ 뉴스레터 발송 외 다른 목적으로 활용되지 않으며, 동의하지 않을 경우 뉴스레터 신청이 되지 않습니다.
닫기